솔직히 저는 영화보다 OST를 먼저 알았습니다. 'City of Stars'를 이어폰으로 흘려듣다가 뒤늦게 이게 라라랜드 음악이라는 걸 알게 됐죠. 노래로 먼저 감정을 쌓아두고 영화를 보니 첫 장면부터 뭔가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꿈과 사랑, 그리고 그 사이에서 마주하는 현실. 라라랜드가 왜 수년이 지나도 회자되는지 저 나름의 시선으로 풀어봤습니다.

줄거리 — 꿈과 사랑이 교차하는 네 계절
영화는 배우를 꿈꾸는 미아(엠마 스톤)와 재즈를 사랑하는 피아니스트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의 이야기입니다. 두 사람의 첫 만남은 꽤 무례하게 시작됩니다. 오디션에서 커피 세례를 맞고 나타난 미아, 크리스마스 특집 해고를 선물 받고 눈이 돌아간 세바스찬. 그는 앞을 막아선 미아의 어깨를 그냥 스치고 지나갑니다. 영화적 클리셰(cliché)라고 할 수 있는 이 장면, 즉 주인공들의 어긋난 첫 만남이 오히려 이 작품에서는 꽤 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클리셰란 반복 사용으로 진부해진 표현이나 설정을 뜻하는데, 라라랜드는 이를 의도적으로 가져다 쓰면서도 그 위에 감정의 밀도를 쌓는 방식을 택합니다.
봄을 지나 두 사람은 서로의 꿈을 이해하는 유일한 존재가 되고 연인 사이로 발전합니다. 그러나 여름이 되자 각자의 꿈은 점점 서로를 멀어지게 만드는 요인이 됩니다. 세바스찬은 재즈의 꿈을 잠시 내려놓고 팝 밴드에 합류하는 현실적 선택을 하고, 미아는 1인극 준비에 매달립니다. 가을에 이르러 두 사람은 크게 다투고, 미아는 공연 실패 이후 배우의 꿈마저 포기하려 합니다.
그 사이에 반전이 생깁니다. 실패라 여겼던 미아의 1인극을 우연히 본 영화감독이 그녀에게 배역 캐스팅을 제안한 것입니다. 세바스찬은 미아를 찾아가 오디션장으로 데려다주고, 두 사람은 서로의 꿈을 응원하는 이별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흐릅니다. 꿈을 이룬 미아는 남편과 함께 들른 재즈바에서 세바스찬과 재회합니다. 그 재즈바의 이름은 미아가 예전에 세바스찬에게 추천했던 바로 그 이름이었습니다. 서로를 알아본 두 사람은 말 대신 눈빛과 미소로 각자의 여정을 응원하며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 계절을 챕터 삼아 봄(만남) → 여름(사랑) → 가을(갈등) → 겨울(이별과 성장)로 이야기가 흐릅니다
- 미아와 세바스찬 각각의 꿈이 사랑과 충돌하는 과정이 영화의 핵심 갈등 구조입니다
- 결말은 해피엔딩과 새드엔딩 어느 쪽으로도 단정 짓기 어렵고, 그 여백이 영화의 가장 큰 여운을 만들어냅니다
제작 비하인드 — 스크린 뒤에 숨겨진 장인의 손길
제가 이 영화를 두 번째 볼 때부터 화면 구석구석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그냥 '색깔이 예쁘다' 정도였는데, 알고 보니 그 색감 하나하나에 의도가 담겨 있었습니다. 미아가 꿈을 향해 달려가는 장면은 따뜻한 붉은 빛으로, 재즈의 꿈을 포기한 세바스찬이 서 있는 장면은 차가운 파란빛으로 처리되어 있습니다. 색채 설계(color grading), 즉 영화에서 특정 색조를 의도적으로 조정해 감정을 전달하는 기법이 이 작품에서는 단순한 미적 선택이 아니라 서사의 일부로 기능합니다.
이 색채 설계를 비롯한 전체 프로덕션 디자인(production design)을 이끈 사람은 데이비드 와스코입니다. 프로덕션 디자인이란 영화의 세트, 소품, 배경 등 시각적 요소 전반을 설계하는 작업을 말합니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펄프 픽션》, 《킬 빌》 시리즈를 함께한 베테랑이지만, 놀랍게도 《라라랜드》가 그의 첫 아카데미 후보 지명 작품이었습니다. 그는 데미안 샤젤 감독을 단 한 번 만난 뒤 《위플래시》도 보기 전에 합류를 결정했다고 밝혔습니다(출처: Forbes).
세트의 약 3분의 1은 실제 로스앤젤레스 현지에서 촬영되었지만, 모든 실제 장소는 어떤 식으로든 손을 댔습니다. 도시 블록 전체를 파란색으로 칠하거나, 기존 벽화를 변형하고 새로운 벽화를 추가하는 방식이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배경 그림들 중 일부가 1964년 《메리 포핀스》의 배경 그림을 그린 화가와 동일 인물의 손에서 나왔다는 사실입니다. 와스코 팀은 실제로 그 화가를 찾아내 같은 효과를 재현했고, 덕분에 미아와 세바스찬이 인상주의풍 풍경 속을 걸어 다니는 장면에는 반 고흐풍 붓터치 같은 질감이 느껴집니다.
플라네타륨 장면은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인데, 이 역시 단순한 현지 촬영이 아니었습니다. 그리피스 천문대(Griffith Observatory) 로비 일부는 실제로 사용했지만, 실내 플라네타륨 세트는 별도로 제작했습니다. 현대화된 실제 그리피스 플라네타륨 대신 원래의 아르데코(Art Deco) 장식, 즉 1920~30년대 유행한 기하학적이고 화려한 양식을 살려 세트를 짓고, 이베이에서 1950년대산 3.6미터짜리 영사기까지 구입했습니다. 샤젤 감독은 CGI와 특수효과를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줄에 매달려 떠오르는 두 사람의 모습을 그대로 노출했는데, 이는 관객이 "영화의 마법"을 인지하면서도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메타픽션적(meta-fictional) 연출 방식입니다. 메타픽션이란 작품이 스스로 허구임을 드러내면서 오히려 관객의 몰입을 유도하는 기법을 뜻합니다(출처: 시크무비 유튜브).
자주 묻는 질문
Q. 라라랜드 결말은 해피엔딩인가요, 새드엔딩인가요?
A. 어느 쪽으로도 단정 짓기 어렵습니다. 미아와 세바스찬은 각자의 꿈을 이루지만 함께하지 않습니다. 두 사람이 서로를 알아보며 미소 짓는 마지막 장면은 슬픔보다는 담담한 화해에 가깝습니다. 보는 사람의 경험에 따라 전혀 다른 감정으로 받아들여지는 결말이기 때문에, 여러 번 볼수록 해석이 달라지는 영화입니다.
Q. 라라랜드 촬영 장소는 실제로 갈 수 있나요?
A. 그리피스 천문대(Griffith Observatory)는 실제로 방문 가능한 로스앤젤레스의 명소입니다. 다만 영화 속 플라네타륨 내부 장면은 별도 제작 세트에서 촬영되었기 때문에 현지와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습니다. 그 외에도 영화 속 여러 거리와 파티 장면 배경지들이 LA 곳곳에 실재하지만, 색채 작업과 벽화 수정이 더해진 상태라 현장에서 영화 속 장면을 그대로 재현하기는 어렵습니다.
Q. 라라랜드 OST 중 가장 유명한 곡은 무엇인가요?
A. 'City of Stars'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2017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주제가상을 수상했으며, 미아와 세바스찬의 감정 변화를 따라 영화 전반에 걸쳐 반복 등장합니다. 저도 이 곡을 먼저 듣고 영화를 찾아보게 된 경우라 개인적으로 특히 애착이 갑니다.
Q. 라라랜드가 아카데미에서 작품상을 못 받은 이유가 뭔가요?
A. 라라랜드는 아카데미 14개 부문에 후보로 오르는 최다 노미네이트 기록을 세웠고 감독상, 여우주연상 등 6개 부문을 수상했습니다. 그러나 작품상은 발표 오류 해프닝 끝에 《문라이트》에 돌아갔습니다. 두 작품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완성도를 인정받았고, 이 사건 자체가 당해 시상식의 가장 큰 화제였습니다.
총평
영화를 보고 난 뒤, 저는 평소 듣던 재즈 선율을 틀고 노을 지는 동네를 혼자 걸었습니다. 특별한 날도 아니었는데 신호등 앞에 서 있는 사람들, 버스를 향해 뛰어가는 학생들이 전부 각자의 꿈을 안고 살아가는 주인공처럼 보였습니다. 그 순간 라라랜드가 보여 준 화려한 뮤지컬 시퀀스가 현실과 동떨어진 판타지가 아니라, 우리가 일상에서 흘려보내는 감정을 음악과 색채로 포착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영화는 꿈을 향해 무조건 달려가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다른 소중한 것을 포기해야 하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보여줄 뿐입니다. 그 담담함이 오히려 오래 남습니다. 아직 라라랜드를 한 번밖에 보지 않은 분이라면, 두 번째 감상을 추천합니다. 처음에 보이지 않던 색과 빛, 그리고 두 사람의 표정이 전혀 다르게 읽히기 시작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