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스텔라는 2014년 개봉 당시 전 세계 6억 7천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흥행에 성공했는데, 그중 한국 단독으로 7천 2백만 달러를 기록했습니다. 인구 대비로 따지면 미국이나 중국도 넘어서는 수치입니다. 처음 이 사실을 접했을 때 솔직히 좀 의외였습니다. 우주물리학을 다룬 영화가 이 정도 흥행이라니 싶었으니까요. 그런데 직접 보고 나서는 이해가 됐습니다. 이 영화는 과학 영화가 아니라, 과학을 언어로 쓴 가족 이야기였기 때문입니다.

제작 비하인드: 소개팅에서 시작된 명작
일반적으로 블록버스터 영화는 스튜디오의 기획 회의실에서 탄생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인터스텔라는 1980년 뉴욕타임스 매거진 편집자의 소개로 처음 만난 영화 제작자 린다 옵스트와 이론물리학자 킵 손의 우정에서 출발했습니다. 두 사람이 연인이 됐다면 이 영화는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참고로 킵 손은 2017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중력파 연구의 핵심 인물로, 상대론적 천체물리학 분야의 최고 권위자입니다.
킵 손이 1988년 발표한 논문, 시공간의 웜홀을 이용한 항성 간 여행 개념이 인터스텔라의 과학적 뼈대가 됐습니다. 웜홀(Wormhole)이란 서로 떨어진 두 시공간을 연결하는 가상의 터널로, 쉽게 말해 우주의 지름길입니다. 처음 이 개념을 접했을 때 저는 그냥 공상과학 설정이라 여겼는데, 실제 물리학 논문을 바탕으로 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영화를 다시 보는 눈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원래 감독은 스티븐 스필버그였고, 각본은 크리스토퍼 놀란의 친동생 존 조나단 놀란이 맡았습니다. 드림웍스가 파라마운트에서 디즈니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영화가 무산될 위기에 놓였고, 그 바통이 크리스토퍼 놀란에게 넘어왔습니다. 형 놀란은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킵 손이 있던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에서 4년간 상대성 이론을 직접 공부했습니다. 감독이 물리학을 4년 공부해서 만든 영화라는 사실, 그 자체가 이미 남다릅니다.
CG를 극도로 자제하는 놀란 감독의 연출 방식도 이 영화에서 빛났습니다. 캐나다 캘거리에서 2 km² 규모의 토지를 매입해 옥수수를 직접 재배했고, 모래 폭풍 장면은 인체에 무해한 식품 첨가제를 바람에 날려 촬영했습니다. 우주선 발사 장면도 실제 아폴로 4호 발사 영상을 활용했습니다. 제가 이 사실을 알고 나서 그 장면을 다시 봤을 때, 화면에서 느껴지는 무게감이 왜 다른지 비로소 이해가 됐습니다.
- 킵 손의 1988년 웜홀 논문이 과학적 토대 — 단순 자문을 넘어 시나리오 전 과정에 참여
- 캐나다 실제 옥수수 밭, 식품 첨가제 모래 폭풍, 아폴로 발사 실제 영상 활용 — CG 최소화
- 파이프 오르간 중심의 한스 짐머 음악 — SF 우주 영화에서 보기 드문 선택으로 긴장감 극대화
흥행 비결: 왜 유독 한국에서 더 많이 울었을까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우주 SF 영화들, 그래비티나 마션, 스타워즈와 비교해도 한국에서 인터스텔라의 흥행은 이례적이었습니다. 놀란 감독이 특별 감사 영상을 만들 정도였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높은 교육열과 교육 수준 덕분이라는 분석도 있었지만, 저는 그 설명만으로는 조금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처음 극장에서 인터스텔라를 봤을 때 가장 먼저 느꼈던 건 과학적 경이로움이 아니라, 쿠퍼가 딸 머피를 두고 떠나는 장면에서 올라오는 울컥함이었습니다. 그리고 시간 지연으로 인해 자녀들이 훨씬 나이 들어버린 영상을 혼자 보는 장면에서는 진짜로 목이 메었습니다. 우주 스펙터클이 아니라 그 안의 감정이 먼저 들어왔습니다.
상대성 이론(General Relativity)의 핵심 중 하나인 중력에 의한 시간 지연, 즉 중력이 강한 곳일수록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는 개념이 영화 전체의 감정 구조를 만들어냅니다. 여기서 시간 지연이란 중력이나 속도 차이로 인해 서로 다른 공간에서 시간이 다른 속도로 흐르는 현상을 말합니다. 이 개념이 단순한 설정이 아니라 실제 물리학 이론에 근거한다는 점이, 영화의 슬픔을 더 깊게 만들었습니다.
10대부터 5, 60대까지 전 연령이 동시에 공감할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블랙홀과 웜홀에 흥미를 느끼는 관객, 가족 간의 이별과 재회에 공감하는 관객, 인류의 생존을 둘러싼 윤리적 갈등에 주목하는 관객이 각자의 방식으로 같은 영화를 봤습니다. 한 편의 영화가 이 세 층위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경우는 드뭅니다.
또한 딜런 토마스의 시 "어두운 밤을 쉬 받아들이지 마시오"가 영화 전반에 걸쳐 흐르는데, 1951년 임종을 앞둔 부친을 위해 쓴 이 시는 영화의 정서와 놀라울 만큼 맞아떨어집니다. 과학과 문학이 이렇게 자연스럽게 결합된 작품은 제 경험상 이 영화가 거의 유일합니다.
총평: 오류가 있어도 명작인 이유
일반적으로 과학 고증이 철저한 영화는 감동보다 지식에 집중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인터스텔라는 그 반대입니다. 과학이 감동의 도구가 됩니다. 블랙홀 가르강튀아의 시각적 표현은 2019년 실제로 촬영된 블랙홀 이미지(출처: 사건지평선망원경(EHT) 공식 사이트)와 비교해도 놀라울 만큼 유사합니다. 이는 킵 손 교수가 물리 방정식을 기반으로 렌더링 팀에 직접 제공한 공식에서 나온 결과입니다.
물론 영화에 오류가 없다고 말하면 거짓말입니다. 밀러 행성의 1시간이 지구 7년에 해당하는 시간 지연이 일어나려면 블랙홀이 행성 하늘을 가득 채울 만큼 가까워야 하는데, 초반 착륙 장면의 연출은 이와 맞지 않습니다. 높이 1.2km에 달하는 거대 파도 역시 기조력(조석력, tidal force) — 두 천체 사이의 중력 차이로 인해 물체가 늘어나거나 찌그러지는 힘 — 의 물리학적 결과와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이런 부분들을 놀란 감독 본인도 영화적 표현을 위한 선택이었다고 인정했습니다.
테서랙트(Tesseract)라는 개념도 마찬가지입니다. 테서랙트란 4차원 초입방체를 의미하는데, 영화에서는 5차원 존재들이 인간이 인지할 수 있도록 3차원 공간으로 변환해 만들어준 구조물로 등장합니다. 쉽게 말해 시간을 공간처럼 조작할 수 있는 5차원의 방입니다. 완전히 증명된 과학은 아니지만, 초끈 이론이나 다차원 우주론과 맞닿아 있는 아이디어라는 점에서 무작정 허구라 단정하기도 어렵습니다.
브랜드 교수의 선의의 거짓말, 만 박사의 극단적 이기심 같은 인간적 갈등도 영화가 단순한 우주 모험담이 아니라는 걸 보여줍니다. 인류를 구한다는 명분 앞에서 개인의 도덕이 어떻게 흔들리는지를 꽤 날카롭게 보여줍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며칠 동안만 박사를 어디까지 이해해야 하는가를 진지하게 고민했습니다. 그 정도로 캐릭터가 살아 있었습니다. 인터스텔라를 처음 본 지 꽤 됐는데, 아직도 밀러 행성에서 돌아온 쿠퍼가 영상 메시지를 확인하는 장면이 머릿속에 선명합니다. 그 장면이 슬픈 이유는 단순히 시간이 흘렀기 때문이 아니라, 그 시간의 차이가 실제 과학으로 설명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허구인데 진짜처럼 느껴지는 슬픔, 그게 이 영화의 힘입니다.